제1화 - 어느 상담교사의 작은 변화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한여름이 시작되기 직전의 비였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는 조용했지만 이상하게도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이로운은 카페 창가에 앉아 천천히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맞은편에 앉은 남자를 바라봤다.
남자는 올해 퇴직을 앞둔 상담교사였다.
20년 넘게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온 사람이었다.
흰머리가 제법 늘어 있었고, 주름도 꽤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표정만큼은 편안했다.
"드디어 퇴직하시네요."
이로운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남자가 작게 웃었다.
"그러게. 아직도 실감은 안 난다."
"섭섭하시겠어요."
"섭섭하지."
남자는 창밖을 잠시 바라봤다.
빗물이 유리창을 타고 천천히 흘러내렸다.
"그래도 후련하기도 하고."
"후련해요?"
"응."
"왜요?"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원래 그래."
남자는 커피잔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매년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고."
"매년 새로운 문제를 만나고."
"매년 새로운 고민을 만나지."
"그런데 신기한 건."
그가 이로운을 바라봤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을 고치는 사람이 아니라 지켜보는 사람이 되더라."
이로운이 웃었다.
"원래 상담교사가 그런 거 아닌가요?"
남자가 피식 웃었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카페 안에는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선생."
"네."
"학교에서 제일 무서운 게 뭔지 알아?"
"학교폭력이요?"
"아니."
"학부모 민원이요?"
"아니."
"그럼 뭔데요?"
남자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거."
"...네?"
"그게 제일 무서워."
이로운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남자는 말을 이어갔다.
"큰 사건은 금방 보여."
"누군가 울고."
"누군가 싸우고."
"누군가 도움을 요청하거든."
"근데 진짜 위험한 건."
그는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천천히 두드렸다.
"아무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순간이야."
"..."
"그때부터는 잘 봐야 돼."
"학생들이 보내는 아주 작은 신호를."
이로운은 조용히 듣고 있었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상담교사들끼리 만나면 자주 하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오늘은 어딘가 달랐다.
묘하게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갑자기 왜 그런 이야기를 하세요?"
남자가 웃었다.
"별거 아니야."
"그냥 퇴직하기 전에 해주고 싶었던 말."
그리곤 자신의 가방을 천천히 열었다.
그리고 작은 나무 상자를 하나 꺼냈다.
손바닥보다 약간 큰 크기였다.
오래된 나뭇결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
딱히 특별해 보이지는 않았다.
"이건 뭔가요?"
"줄게."
"...네?"
"가져."
이로운이 웃었다.
"장난감인가요?"
"장난감은 아니고."
남자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선물이야."
"갑자기요?"
"응."
"왜 저한테요?"
"네가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이게 뭔데요?"
남자는 잠시 망설였다.
그러더니 짧게 말했다.
"보관함."
"...보관함이요?"
"응."
"뭘 보관하는데요?"
"그건 나도 잘 몰라."
이로운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주시는 분이 모르시면 어떡해요."
"그러게."
"근데 진짜 몰라."
"대신 하나는 알아."
"뭔데요?"
남자는 창밖을 바라봤다.
빗줄기가 조금씩 굵어지고 있었다.
"이건 필요한 순간에만 움직여."
"..."
"그리고 아무한테나 가지도 않아."
"..."
"아마 널 꽤 오래 지켜봤을 거야."
이로운은 피식 웃었다.
"점점 무서운 이야기로 가시네요."
"그래?"
"네."
"그럼 적당히 믿고 적당히 잊어버려."
남자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퇴직 축하 선물이라고 생각해."
"아니, 제가 퇴직하는 게 아니잖아요."
"곧 새로운 시작을 하는 거니까."
그 말을 끝으로 남자는 웃으며 카페를 나섰다.
이로운은 잠시 멍하니 상자를 바라봤다.
묘했다.
정말 평범한 나무 상자였다.
그래서 더 이상했다.
.
.
.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이로운은 소파 위에 상자를 올려놓았다.
옷을 갈아입고 냉장고에서 물을 꺼냈다.
그리고 무심코 다시 상자를 바라봤다.
"..."
이상했다.
아까보다 조금 따뜻했다.
"기분 탓인가."
이로운은 손으로 상자를 만져봤다.
분명했다.
따뜻했다.
그 순간이었다.
툭.
상자 안에서 아주 작은 소리가 들렸다.
이로운의 움직임이 멈췄다.
"...뭐지?"
툭.
다시 한번 소리가 들렸다.
상자 표면의 나뭇결 사이로 희미한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로운은 천천히 몸을 앞으로 숙였다.
그리고 순간.
상자 위에 글자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사용자 등록 완료』
"...뭐야?"
『초기 관리자 권한 활성화』
"...?"
『새별중학교 관리 구역 배정 완료』
"...뭐라고?"
그리고 마지막 문장이 나타났다.
『학생들을 지켜라.』
순간.
이로운의 표정이 굳어졌다.
왜인지 모르게.
아주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마치.
무언가가 이제 막 시작되려는 것 같은.
그런 예감이었다.
- 2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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