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습작 1 수정 - 상자의 선택(1부)

제5화 - 평범함의 기준

Yoon89 2026. 6. 15. 10:10

제5화 - 평범함의 기준

오후 4시 10분.

종례가 끝난 학교는 조금씩 한산해지고 있었다.

운동장에서는 축구공 차는 소리가 들려왔고, 복도에는 학원 가방을 멘 학생들이 빠른 걸음으로 지나갔다.

이로운은 상담실 창문을 조금 열었다.

따뜻한 바람이 천천히 들어왔다.

그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자 낯선 학생 한 명이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2학년 남학생이었다.

덩치가 조금 큰 편이었고 안경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표정은 꽤 긴장해 있었다.

"안녕하세요."

"안녕."

"앉아."

학생은 천천히 소파에 앉았다.

하지만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이로운은 물 한 잔을 건넸다.

"천천히 이야기해도 괜찮아."

"...네."

"이름이 뭐야?"

"정태윤이요."

"2학년?"

"네. 2학년 3반이요."

"그래. 태윤아."

"무슨 일로 왔어?"

정태윤은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별일은 아니에요."

"응."

"근데 그냥 좀 답답해서요."

"어떤 게 답답해?"

"..."

"...다들 너무 잘 사는 것 같아요."

이로운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정태윤이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새 운동화도 신고."

"새 핸드폰도 쓰고."

"주말에는 놀러 가고."

"다들 되게 잘 지내는 것 같아요."

"..."

"저만 뒤처지는 느낌이에요."

"그렇게 느끼는구나."

"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로운은 질문 하나를 던졌다.

"근데 태윤아."

"응?"

"그 친구들이 정말 괜찮아 보여?"

정태윤은 멈칫했다.

"...네?"

"정말 아무 문제 없이 괜찮아 보여?"

정태윤은 곰곰이 생각했다.

"...아닌 애들도 있어요."

"그래?"

"네."

"맨날 피곤해하는 애도 있고."

"잠 못 잤다는 애도 있고."

"학원 때문에 힘들다고 하는 애도 있어요."

"근데도 부러워?"

"..."

정태윤은 고개를 숙였다.

"네."

"...왜냐하면."

"뒤처지기 싫어요."

이로운은 그 말에 조금 마음이 쓰였다.

뒤처지고 싶지 않다는 말.

누군가보다 잘하고 싶다는 말보다.

더 위험한 말일 수도 있었다.

그때였다.

복도에서 학생들 목소리가 들렸다.

"야, 그거 어떻게 했어?"

"아, 쉬워."

"진짜?"

"응."

"다 알려주더라."

"누가?"

"그냥 있어."

학생들은 웃으며 지나갔다.

정태윤도 자연스럽게 그쪽을 바라봤다.

그리고 아주 작게 말했다.

"...요즘 애들 사이에서 그런 말 진짜 많이 해요."

"어떤 말?"

"'그냥 있대.'"

"'방법 있대.'"

"'알려준대.'"

"..."

"근데 누구인지는 아무도 정확히 말을 안 해요."

이로운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상담실 문이 다시 열렸다.

"선생님."

서이현이었다.

"어?"

"들어와도 돼?"

"응."

서이현은 자연스럽게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다가 정태윤을 보고 인사를 건넸다.

"안녕."

"...어, 안녕."

둘은 같은 2학년이었지만 친한 사이는 아닌 듯했다.

서이현은 빈백에 앉으며 말했다.

"아까 복도 엄청 시끄러웠어요."

"왜?"

"애들이 다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뭔데?"

"이번 주말에 뭘 산다느니."

"어디를 간다느니."

"누가 소개해줬다느니."

"..."

그러더니 잠시 말을 멈췄다.

"근데."

"이상해요."

"뭐가?"

"다들 웃고 있는데."

"..."

"조금 조급해 보여요."

상담실 안이 잠시 조용해졌다.

정태윤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쉬는 시간에도 바쁘고."

"점심시간에도 바쁘고."

"집에 가서도 바빠요."

"..."

"근데 왜 바쁜지는 잘 모르겠어요."

이로운은 두 학생을 번갈아 바라봤다.

둘 다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형태는 다르지만.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웅.

가방 안의 상자가 진동했다.

이로운은 조용히 가방을 열었다.

희미한 글자가 떠오르고 있었다.

『1차 이상 현상 확인』

『비교가 일상이 되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문장이 하나 나타났다.

『결핍은 만들어진다』

이로운의 시선이 잠시 멈췄다.

만들어진다.

그 단어가 유난히 마음에 남았다.

그때였다.

서이현이 갑자기 창밖을 바라봤다.

그리고 작게 중얼거렸다.

"...또 저 사람이네."

이로운이 물었다.

"누구?"

서이현은 잠시 복도를 바라봤다.

학생 몇 명이 누군가 주변에 모여 있었다.

아직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분위기는 묘하게 편안했다.

그리고 안심하는 표정들이 보였다.

서이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잘 모르겠어요."

"...근데 자꾸 보여요."

"...누군가 애들을 도와주고 있어요."

그 말과 동시에.

복도 끝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아."

"어려우면 말해."

"내가 방법 알려줄게."

낯선 목소리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로운은 그 목소리를 기억하게 될 것 같았다.

  • 6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