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 작은 부탁
다음 날.
오전 10시 40분.
3교시가 끝난 쉬는 시간이었다.
상담실은 조용했다.
이로운은 학교 홈페이지 공지사항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똑똑.
"들어오세요."
문이 천천히 열렸다.
들어온 학생은 정태윤이었다.
그런데 평소와 조금 달랐다.
표정이 밝았다.
너무 밝았다.
"안녕하세요."
"어, 태윤이 왔네."
"네."
"좋은 일 있어?"
정태윤이 웃었다.
"조금요."
"그래?"
"네."
이로운은 자연스럽게 물었다.
"무슨 좋은 일인데?"
정태윤은 잠시 망설였다.
"그냥..."
"요즘 고민이 좀 해결됐어요."
"어떤 고민?"
"돈이요."
"..."
"아."
"잘 해결됐네."
정태윤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쉬웠어요."
이로운의 손이 잠시 멈췄다.
익숙한 말이었다.
생각보다 쉬웠다.
"어떻게 해결했어?"
정태윤은 또다시 잠시 망설였다.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요."
"누군데?"
"그건..."
정태윤은 웃으며 말했다.
"그냥 선배요."
"몇 학년 선배?"
"잘 몰라요."
"..."
"잘 모른다고?"
"네."
"다들 그냥 선배라고 불러요."
이로운은 이상함을 느꼈다.
학생들은 원래 이름을 잘 기억한다.
특히 도움을 받은 사람이라면 더 그렇다.
그런데 이름을 모른다.
그건 조금 이상했다.
"뭘 도와줬는데?"
"잠깐 돈을 빌려줬어요."
"..."
"얼마?"
"3만 원이요."
"언제 갚는데?"
"다음 달이요."
"조건은?"
정태윤은 고개를 갸웃했다.
"조건은 없는데요?"
"..."
"진짜?"
"네."
"그냥 힘들면 서로 돕는 거래요."
이로운은 미소를 유지했지만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졌다.
세상에 조건 없는 거래는 거의 없었다.
특히 학교 안이라면 더 그랬다.
.
.
.
점심시간.
서이현이 상담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앉자마자 한숨을 내쉬었다.
"왜?"
"이상해요."
"뭐가?"
"요즘 애들 분위기요."
"또?"
"네."
"이번엔 뭐가 이상한데?"
서이현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다들 여유가 생겼어요."
"여유?"
"네."
"돈이 없다고 하던 애들도 갑자기 뭔가를 사고."
"주말 약속도 잡고."
"기분도 좋아졌어요."
"..."
"좋은 거 아니야?"
그러자 서이현이 바로 대답했다.
"아니요."
"..."
"너무 갑자기예요."
"..."
"원래 사람은 갑자기 안 바뀌잖아요."
이로운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도 맞았다.
그때였다.
복도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야, 진짜 편하다."
"그치?"
"생각보다 별거 아니네."
"그러니까."
"왜 진작 안 했지?"
학생들이 웃으며 지나갔다.
서이현의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
"...선생님."
"응?"
"저 말도 요즘 자주 들어요."
"어떤 말?"
"'왜 진작 안 했지?'"
"..."
"계속 들어요."
.
.
.
방과 후.
운동장 옆 벤치.
학생 세 명이 모여 있었다.
그중 한 명이 작은 수첩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천천히 갚으면 돼."
"부담 갖지 마."
"대신 나중에 부탁 하나만 들어주면 돼."
학생들이 웃었다.
"그 정도야 쉽지."
"그치?"
"응."
아주 평범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너무 자연스러웠다.
이로운은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봤다.
그리고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웅.
가방 안의 상자가 진동했다.
희미한 문장이 떠올랐다.
『거래 성립』
『주의』
『대가는 즉시 요구되지 않는다』
그리고 새로운 문장이 나타났다.
『작은 부탁은 가장 위험한 계약이 된다』
이로운의 눈빛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 순간.
멀리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걱정하지 마."
"다들 하고 있어."
"..."
"나중에 딱 한 번만 도와주면 돼."
이로운은 그쪽을 바라봤다.
하지만 이미 학생들은 흩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운동장 한쪽.
누군가가 천천히 학교 밖으로 걸어 나가고 있었다.
교복을 입고 있었다.
손에는 작은 수첩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 아주 잠깐.
햇빛에 반사된 목걸이 하나가 보였다.
검은색이었다.
이로운은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
"...저건 뭐지?"
그 순간.
상자가 마지막 문장을 띄웠다.
『첫 번째 흔적 발견』
- 9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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