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습작 1 수정 - 상자의 선택(1부)

제9화 - 부탁의 대가

Yoon89 2026. 6. 15. 10:24

제9화 - 부탁의 대가

오전 9시 50분.

2교시가 끝난 쉬는 시간이었다.

새별중학교 복도는 평소처럼 시끄러웠다.

하지만 이로운은 조금 달랐다.

요즘 학생들의 표정을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

그냥 지나치던 것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웃고 있다.

떠들고 있다.

평범해 보인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뭔가 달랐다.

어딘가 조급했다.

그리고 누군가는 계속 휴대폰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상담실 문이 열렸다.

박시우였다.

"안녕하세요."

"어, 시우 왔네."

"네."

박시우는 소파에 앉자마자 가방을 옆에 내려놨다.

평소보다 기운이 없어 보였다.

"무슨 일 있어?"

"...아니에요."

"그 얼굴은 아닌데."

박시우는 피식 웃었다.

"상담 선생님들은 진짜 다 아는 것 같아요."

"다 알지는 못해."

"대신 표정은 보이더라."

"..."

박시우는 잠시 망설였다.

그러다가 입을 열었다.

"...선생님."

"응."

"혹시 약속을 안 지키면 어떻게 돼요?"

이로운의 눈빛이 아주 살짝 변했다.

"어떤 약속?"

"그냥..."

"친구랑 한 약속이요."

"친구끼리?"

"...네."

"뭘 약속했는데?"

박시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렵진 않아요."

"숙제 좀 알려달라고 하고."

"물건 좀 대신 전달해달라고 하고."

"그런 거예요."

"..."

"근데 하기 싫어지면 어떡해요?"

이로운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질문을 하나 던졌다.

"하기 싫은데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야?"

박시우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네."

"맞아요."

"왜 그럴까?"

"..."

"약속을 어기면 미안하니까?"

"..."

"아니면 뭔가 잃어버릴 것 같아서?"

박시우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리고 아주 작게 말했다.

"...그런 것 같아요."

"뭘 잃어버릴 것 같은데?"

"...도움을 못 받을 것 같아요."

"..."

"다음에 또 힘들어지면."

"그때는 아무도 안 도와줄 것 같아요."

이로운은 그 말을 머릿속에 새겼다.

도움이 관계를 만드는 게 아니었다.

도움이 의존을 만들고 있었다.

.

.

.

점심시간.

상담실 앞 복도.

서이현이 급하게 걸어왔다.

표정이 좋지 않았다.

"선생님."

"응?"

"저 이상한 거 봤어요."

"뭔데?"

"정태윤이요."

"태윤이?"

"네."

"왜?"

서이현은 주변을 한번 둘러봤다.

그리고 목소리를 낮췄다.

"계속 뭘 하고 다녀요."

"...뭘?"

"애들한테 쪽지를 주고 있어요."

"쪽지?"

"네."

"그리고 어떤 애들은 받자마자 표정이 좋아져요."

"..."

"근데 어떤 애들은 갑자기 긴장해요."

이로운은 조용히 듣고 있었다.

"확실해?"

"네."

"아까도 봤어요."

"그리고..."

서이현은 잠시 망설였다.

"...태윤이가 원래 저런 애는 아니거든요."

"..."

"누가 시키는 것 같아요."

그 말이 묘하게 오래 남았다.

누가 시키는 것 같아요.

.

.

.

방과 후.

학생들이 하나둘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이로운의 휴대폰에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발신인은 없었다.

[학생들을 잘 보세요.]

"...?"

잠시 후.

메시지가 하나 더 도착했다.

[요즘 아이들은 폭력보다 거래에 익숙합니다.]

이로운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리고 마지막 메시지가 도착했다.

[거래는 부탁에서 시작됩니다.]

순간.

웅.

가방 안의 상자가 강하게 진동했다.

그리고 지금까지와 달리 글자가 조금 더 선명하게 떠올랐다.

『2차 이상 현상 진행 중』

『의존 구조 형성』

『주의』

『대가는 관계 속에 숨겨진다』

그 순간이었다.

교문 앞에서 학생 한 명이 누군가에게 작은 메모를 건네고 있었다.

메모를 받은 학생은 잠시 읽더니 표정이 굳어졌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이번 한 번만 할게."

멀리서 들려온 짧은 대화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가 머릿속에 오래 남았다.

이번 한 번만.

이로운은 자신도 모르게 그 학생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아주 잠깐.

그들 뒤편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키가 컸다.

교복도 단정했다.

표정도 차분했다.

하지만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학생들은 그 사람을 편하게 대하고 있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처럼.

그리고 그 사람은 아주 자연스럽게 웃었다.

"괜찮아."

"다들 그렇게 시작하는 거야."

순간.

이로운의 시선이 멈췄다.

그 사람의 목걸이가 다시 한번 햇빛에 반짝였다.

검은색이었다.

그리고 아주 작게.

어딘가에 새겨진 문양 하나가 보였다.

상자는 곧바로 반응했다.

『경고』

『표식 발견』

『관찰 대상을 놓치지 마라』

  • 10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