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습작 1 수정 - 상자의 선택(1부)

제14화 - 원하는 것을 아는 사람

Yoon89 2026. 6. 15. 11:00

제14화 - 원하는 것을 아는 사람

목요일 오전.

새별중학교 2층 복도.

쉬는 시간이 되자 학생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로운은 상담실 문 앞에 서서 복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학생 셋이 강민재를 붙잡았다.

"선배."

"응?"

"저 진짜 큰일 났어요."

강민재는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차분하게 웃었다.

"왜?"

"이번 시험 망할 것 같아요."

"어떤 과목?"

"수학이요."

"최근에 공부 시간이 줄었지?"

학생이 눈을 크게 떴다.

"...어?"

"맞아요."

"학원 숙제도 밀렸고."

"잠도 늦게 자고."

학생은 감탄했다.

"와."

"어떻게 아셨어요?"

강민재는 웃었다.

"얼굴만 봐도 보여."

학생들이 웃었다.

"진짜 신기하다."

"선배는 상담교사 해도 되겠다."

강민재는 손을 저었다.

"아니야."

"..."

"난 그냥 사람들을 잘 보는 거야."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던 이로운의 시선이 멈췄다.

'사람들을 잘 본다.'

좋은 능력이었다.

상담교사인 자신도 매일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묘한 차이가 있었다.

상담은 학생 스스로 답을 찾게 돕는다.

하지만 강민재는 달랐다.

답을 알려줬다.

너무 쉽게.

너무 자연스럽게.

.

.

.

점심시간.

상담실.

서이현이 빈백에 앉아 있었다.

오늘은 유난히 조용했다.

이로운이 물었다.

"무슨 생각해?"

"...선생님."

"응?"

"상담이랑 조언은 다른 거예요?"

이로운은 웃었다.

"갑자기?"

"네."

"조금 궁금해서요."

이로운은 잠시 생각했다.

"상담은 같이 답을 찾는 거고."

"조언은 답을 알려주는 거라고 생각하면 쉬워."

서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애들은 조언을 더 좋아하겠네요."

"왜?"

"쉽잖아요."

"..."

"생각 안 해도 되고."

"바로 해결되는 것 같으니까."

"..."

"근데 오래가지는 않겠죠?"

이로운은 살짝 웃었다.

"그걸 벌써 아네."

서이현도 웃었다.

"그냥 느낌이에요."

그리고 잠시 후.

표정이 조금 진지해졌다.

"...근데 선생님."

"응?"

"...민재 선배는 무섭기도 해요."

"...왜?"

"다들 의지하고 있거든요."

"..."

"그게 꼭 좋은 건 아닌 것 같아요."

.

.

.

방과 후.

학교 도서관 앞.

이로운은 자료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연히 강민재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는 공부를 잘하고 싶은 게 아니야."

학생이 멈칫했다.

"네?"

"칭찬받고 싶은 거지."

"..."

"그리고 너는."

다른 학생을 바라봤다.

"공부보다 불안한 걸 없애고 싶은 거고."

학생들의 표정이 천천히 바뀌었다.

마치 속마음을 들킨 사람처럼.

강민재는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괜찮아."

"다들 그래."

"..."

"중요한 건 네가 뭘 원하는지 아는 거야."

학생들이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진짜 속이 편해졌어요."

학생들이 떠나자.

강민재는 잠시 혼자 남았다.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역시 사람은 똑같네."

순간.

이로운의 걸음이 멈췄다.

그 말은 이상했다.

사람을 이해하는 사람의 말이라기보다는.

사람을 분석하는 사람의 말 같았다.

그때였다.

웅.

가방 안의 상자가 진동했다.

그리고 아주 짧은 문장이 나타났다.

『관찰 대상 분석 완료』

『주의』

『욕망을 읽는 자는 사람을 움직일 수 있다』

이로운의 시선이 천천히 강민재에게 향했다.

그 순간.

강민재가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처음으로.

이로운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상담 선생님."

"..."

"안녕하세요."

"...안녕."

강민재는 부드럽게 웃었다.

"학생들 많이 힘들죠?"

"..."

"요즘은 불안한 게 너무 많잖아요."

"..."

"그래서 제가 조금 돕고 있어요."

너무 자연스러운 말이었다.

너무 착한 말이었다.

그런데.

이로운는 이상하게도.

그 웃음 뒤에 무언가 숨겨져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강민재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선생님."

"..."

"학생들은 생각보다 아주 단순해요."

"..."

"필요한 걸 주면 움직이거든요."

순간.

이로운의 표정이 아주 조금 굳어졌다.

강민재는 웃으며 돌아섰다.

그리고 학생들 사이로 다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로운은 처음으로 확신했다.

'저 학생은 학생들을 돕는 게 아니다.'

'학생들을 움직이고 있어.'

  • 15화에 계속 -